혈액형 성격설의 거짓
다들 적어도 한번쯤은 혈액형 성격설에 대해서 들어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같은 웹툰이라던지, 혹은 블로그나 싸이월드같은 온라인 공간이나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잡담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속설이죠. 누군가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일겁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심리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깨부숴야 할 사회악중 하나입니다. 왜냐? 일단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유가 첫째요, 이 속설이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이유가 그 둘째거든요. 백해무익하면 했지, 도무지 어디에 쓸데가 없습니다.
일단, 먼저 성격의 형성에 대해서 설명해 보도록 하죠.
1. Nature VS Nurture
유전과 환경의 영향은 심리학 분야에서 항상 학자들을 괴롭혀온 숙제입니다. 어떤 학자는 유전이 모든걸 결정한다고도 하고, 다른 학자는 환경이 모든걸 결정한다고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이 유전과 환경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특정한 행동 혹은 생각등 정신적 요소들을 만들어 낸다고 보고 있죠. 성격의 경우에는 유전의 영향이 있으나, 환경의 영향이 우세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격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식을 사용했지요. 현재 학계의 전반적 입장이라면, 성격의 형성은 오랜기간을 걸쳐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 생애동안 성격은 계속 변화할 수 있죠.
- 유전의 영향?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의 100%를 공유하고, 이란성 쌍둥이는 보통 형제자매 만큼의 유전자를 공유하죠. 그렇기에 많은 연구자들이 쌍둥이 연구를 통해서 유전의 영향을 테스트합니다. 현재까지 "성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 성격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찾는데에는 성과가 있었죠. 예를 들어, 도파민은 동기부여와 보상에 연관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그리고 약물중독과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생리적인 현상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게 유전의 영향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례 미국의 철도 노동자였던 피니어스 게이지는 1848년, 폭발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정확히는 왼쪽 전두엽을 꿰뚫는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사망은 면했지만, 게이지는 한쪽눈을 잃고 평생동안 고통에 시달려야 했죠. 하지만 이 사고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피니어스 게이지의 급격한 성격 변화입니다. 사고 이전에는 친절한 이웃이었던 게이지가 사고를 겪고나서 태도가 180도 변했습니다. 그는 과격하고 성급한 사람이 되었죠. 이 사례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고, 뇌와 성격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되었습니다.
- 환경의 영향? 환경을 결정하는 요소는 문화, 사회, 종교, 가정환경, 경제적 지위등 정말 다양합니다. 환경적 영향을 지지하는 유명 학자라면 알버트 반두라를 꼽을 수 있겠군요. 반두라는 성격을 행동, 인지, 그리고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주위 환경의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주고, 또 우리의 생각이 행동을 제어하고 환경을 만들어 나가며, 행동을 통해 생각과 환경을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Reciprocal determinism이라고 하죠. 또한, 이 이론에 따르면 성격 형성에는 Self-efficacy라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어떠한 환경이 주어졌을때, 자신에 대한 확신이 클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거죠. 위에 잠시 설명했듯이, 성격발달은 장기간에 걸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발달 과정중 환경에 따라서 다양한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이 요구되고, Self-efficacy가 이와 작용하면서 성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혈액형이 아닌가? 혈액형을 결정하는 요소는 적혈구에 붙은 당단백질입니다. A형 은 A 항원이, B형은 B 항원이, AB형은 둘 다 있으며 O형은 둘 다 없습니다. 그래서 A형은 A형에게만, B형은 B형에게만 수혈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항원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실험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성격 검사를 사용합니다. 보통 실험 환경에서는 Big 5라는, 5 요인 모델을 사용하는데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혈액형간의 유의미한 성격 차이는 없습니다. 동양권에서 행하는 실험에서는 혈액형별로 차이가 조금 나긴 하나, 연구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이는 Self-fulfilling prophecy라는 현상에 의한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자신의 혈액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설명에 들어맞도록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하지만 맞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론합니다. "이거 딱 내 얘기네요" 혹은 "자기 주위 사람들은 전부 설명에 들어 맞는다". 물론 그렇겠죠. 애초에 혈액형별 설명이나 별자리같은 종류의 소설들은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얘기하는것 같다고 생각하죠. 예를 들어, '인간 관계에 낯가림이 있다', '사생활에 비밀이 많다' 같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기준도 없는 말은 사실 누구나 다 해당되는 말이거든요. 대체 어느 누가 인간 관계를 만들때 처음부터 십년지기처럼 행동하며, 할말 못할말 안가리고 떠벌리고 다닐까요? 이런걸 바로 바넘 효과, 혹은 포러 효과라고 합니다. 어떠한 말을 유연하게 해석하여 특정인에게 적용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적절한 예시로는 별자리 성격설이나 필적학등이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로 보는건데 굳이 사회악이랄것까진... 또 어떤 이들은 혈액형 성격설을 그저 유희용으로만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혈액형 성격설에 의해서 생기는 편견에 의해서 악영향을 받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만 면접장에서 혈액형을 본다거나 이성교제를 할때 특정 혈액형을 선호/기피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렇게 실생활에서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사회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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