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회의주의

2016-01-10 soma0sd 회의주의 창조과학 유사과학


과학이라고 불리는 활동은 자연을 탐구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학적 회의주의를 따릅니다. 과학자들이 이전에 섣불리 진리를 말하다가 실패한 과거를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자들의 선전포고

창조주의자들은 그들이 "진화론[^1]"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들의 창조과학의 대립구도를 만들 때 진리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의와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과학들이 "다른 진리"를 추구한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믿어야 했습니다.

창조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이념 전쟁은 학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나타나는 현상도 지금까지의 종교, 이념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우선 창조주의자들의 선전포고를 받은 과학계의 많은 구성원들은 창조주의자들에게 공격받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계의 학회에 그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학계 안에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교회안에서 창조과학이 발휘하는 어떤 파급력에 비해서 정작 한국 물리학회, 원자력 학회, 천문학회, 행성학회 등에서 그들이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발표를 한다거나 논문을 투고하는 일이 없습니다.

학회를 상대로 "성전"을 하기에는 그들이 하는 활동은 과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켜지고 있지 않기에 학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진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탐구는 멈춘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적용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대해서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가져오도록 하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인데 사실무근입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스승인 티코 브라헤가 남긴 자료를 분석하여 태양계의 행성들이 움직이는 3개의 법칙을 발견해냅니다. 행성들이 타원을 그리며 공전한다는 사실은 그 당시 행성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을 던져주었지요. 그러던 와중에 무신론자 친구가 하나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무신론자 친구가 케플러의 행성 법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자. 케플러는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서 "신이 이렇게 조화롭고 아름답게 태양계를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하지요. 뭐, 사실무근입니다.

이야기 속의 케플러는 여기서 행성의 배치를 신이 직접 했을 것이라고 믿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행성 법칙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하는 우를 범해버리는 것이지요. 다르게 생각하면, "어떻게"를 탐구했어야 하는 문제를 두고 "왜"에 대한 문제로 생각한 다음 설명할 수 없는 답을 내어 놓았고, 그렇게 결론을 지어버렸습니다.

정작 탐구해야 했던 "어떻게"는 케플러 이후에 등장한 아이작 뉴턴이 "중력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게 됩니다.

"왜"와 "어떻게"의 차이

과학은 어떤 것에 이유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탐구는 "왜 돌맹이가 이곳에 있을까?"를 주제로 하는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돌맹이가 이곳에 있게 되었을까?"를 주제로 잡아야 하지요.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 이러한 과학적 회의주의의 특성에 기인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왜"는 가치를 부여하는 질문이거든요. 원인이 아니라 이유를 찾다보면, "돌맹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의 의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쉽사리 음모론이나 초자연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내리기 쉽지요.

그렇기에 더이상의 탐구를 허용하지 않는 "초자연적 의지"는 과학자들이 피해야 하는 결론입니다.

과학의 변화

재미있게도 과학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이유로 과학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비단 창조주의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뭐 몇몇 뉴스기사만 봐도 상대론이 흔들린다던가 양자역학을 새로 써야 한다던가 하는 말들 많이 쓰잖아요?

미디어가 그렇게 내뱉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누군가의 무지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과학에서 일어나는 변화라는 것,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은 창조주의자들의 기대와는 크게 다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면 현재 정상과학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존의 과학들이 모두 틀린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요.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과학의 발전은 인류가 점점 더 멀리, 넓게, 깊게 볼수 있게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심지어 정반대 처럼 보이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천동설은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우주의 형태가 "천구"라고 불리는 거대한 공모양 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동설이 발전하면서 "알마게스트"라는 책이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에 나온 행성과 별의 운동은 계산이 좀 복잡해서 그렇지 상당히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다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유명한 일이지요. 코페르니쿠스는지구 대신에 태양을 그 당시에 알려진 우주의 중심으로 놓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알마게스트"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원으로 설명했던 행성의 운동을 하나의 원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과제는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겼다고 끝난것이 아닙니다. 천동설은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매우 근접하게 예측해냈고, 코페르니쿠스는 그만큼, 혹은 그만큼보다 더 잘 예측해내야 했지요. 결국 지동설이 내놓는 답과 천동설이 내놓는 답이 일치해야만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갈릴레오가 나타나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세계는 천구를 벗어나 각각의 천체가 움직이고 있는 우주로 확장되었고, 저 멀리 보이는 별의 운동 법칙이 지구와 같은 운동법칙을 따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의 과학혁명은 또다시 기존의 과학과 같은 답을 내놓으면서도 더욱 큰 세계를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우주의 극한에 환경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었던 상대성이론은 느린 속도와 작은 중력에서는 지금까지의 우리 세계를 정확히 설명해내는 뉴턴의 역학과 일치하는 답을 내놓아야 했고,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있는 데다가 불확정적인 엄청나게 작은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인간이 볼 수 있을 정도의 큰 세계에서 뉴턴 역학과 일치해야 했습니다.

"미래에는 진화론이 틀렸을지도 모르니 미리 믿지 않겠다."

라는 말은 과학의 발전과정, 그러니까 변화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1]:여기서 창조주의자들이 말하는 "진화론"은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빅뱅이론, 상대성이론, 지사학 등 그들의 성경해석에 반하는 모든 주류과학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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