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다른 모든 과학 이론과 마찬가지로 100% 진리로 완전하게 정립된 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난다는 걸 사실로 확인했으며 단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기반을 구축한 다윈에 의해 이미 두 가지 중요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유전정보에 ‘우연한 변이’가 생긴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적합했던 변이가 더 많이 선택되어 자손을 더 남긴다는 ‘자연선택 (적자생존)’이다. 물론 이것으로 진화가 완전히 설명되는 건 아니며 지금도 새로운 추가 설명들이 나온다. 그런데 진화론의 가장 기본인 이 두 가지 설명조차 대부분 잘못 받아들여져 심각한 오해를 일으킨다. 이건 우리가 상대성이론이나 소립자이론은 잘 모르지만 진화론은 잘 안다는 착각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진화론과 현대과학 자체를 부정하려는 반진화론자들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1. 과학이나 수학, 통계에서 말하는 ‘우연’

어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건 왠지 어쩌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학에서 말하는 ‘우연 (무작위,  랜덤)’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우연’과는 의미가 다르다. 즉,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도 들어가지 않은 가장 공평하고 객관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전정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유전자가 늘어선 게놈에 돌연변이 등으로 DNA 서열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냥 DNA 염기 몇 개만 변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 통째로 증폭 (gene duplication) 되거나 융합되는 현상 (gene fusion), 특정 염기의 반복이 마구 늘어나거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중간에 끼어드는 등의 수많은 현상이 생물학에서 발견됐고 여기에 어떤 ‘필연’은 없다. 어디에서 어떤 변이가 일어날지는 그 누구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현상’이다.

진화론에서 ‘우연한 변이’가 생겼다는 말은 그 유전정보의 변화를 누가 옆에서 조정한 것도 아니고, 누가 열심히 정신 집중해서 된 것도 아니고, 또 누가 미리 다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일어난 게 아니라, 공평하고 무작위한 변화가 유전정보에 생겼다는 뜻이다. 사실은 여기서 진화의 놀라운 창조성이 드러난다. 변이란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며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미처 상상도 못 했던 수많은 신기한 생물들이 있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또한, 미생물에서 시작한 생물이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확대되어 간 믿어지지 않는 변화를 이룬 것도 미리 누가 유전정보 변화에 어떤 제한이나 틀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생물이 만들어졌다는 게 말이 되나?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는 이 세포가 진화하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저절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의학을 전공했다는 어떤 창조론자님의 글, 중간의 강조표시는 원문 그대로임.)
“당신 같은 진화론 추종자들에겐 "우연"이 '영웅'이지요~ 무조건 "우연"이라고 우기면 되니까요...” (진화론을 연구했다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연히 저절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우연히 저절로 어류가 생기고 우연히 저절로 양서류, 파충류가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문이 많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바로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 2개조차도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칭 진화론 전문가라는 창조론자들이 이런 비난을 하며 진화론을 비웃을 때, 반대로 그들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개나 4개도 아니고 겨우 2개의 기본 핵심마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기가 진화론을 잘 검토해 봤는데 그건 엉터리라고 할 수 있는가?

2개의 기본 핵심은 처음에 설명했다. ‘우연’으로 수많은 변이가 생기고, 그 변이 중 그때 그 환경에 가장 적합한 변이만이 엄밀하게 자연선택이란 ‘필연’으로 선택되어 자손을 더 늘려나간다. 즉 ‘우연’만으로는 당연히 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 ‘우연’이란 건 어디까지나 수많은 가능성을 테스트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우연’들이 전부 선택되는 게 아니다. 아미노산이 우연히 모여 여러 가지 복잡한 입체구조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기능성을 나타낸 입체구조의 단백질만이 선택된다. 물 속에서 생물은 수많은 변이를 거쳤고, 물 속에 가장 적합한 생활이 가능했던 어류가 탄생했다. 육지로의 생활환경 변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다양한 변이는 대부분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멸종됐고, 그 물가라는 환경에 적합한 양서류 형태만이 선택되어 자손을 남겼다. 파충류, 조류로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변이가 우연히 만들어져 시도됐고, 그 중에서 적합했던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진화론 어디에서도 ‘우연’만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이 반드시 그 뒤에 붙어있다!


3. 그래도 ‘우연’이 개입된 진화로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나요?

먼저 이건 과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거부하고 기분 좋다고 받아들이는 게 과학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모든 별들이 돈다는 천동설이 훨씬 기분이 좋으므로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첫 번째도 아니고!) 3번째 행성에 불과하다. 우리 태양은 은하 안에서 수천만 또는 수조 개가 있는 별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주 전체에는 이런 거대한 은하가 또 1000억 개 정도가 있다. 여기의 어디가 기분이 좋아서 이 현대 우주론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진화론은 받아들이지 못할까?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또 우리 인간이 뭔가 더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엉터리 이론을 만들어 믿을 수는 없다. 어떻게 엉터리 이론을 만들어 믿는 것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진실을 하나하나 찾아가야지, 자기 맘에 드는 것만 취해서 진리에 도달하게 될까?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얕은 지식에 매달린 인간의 교만이 아닐까?

그리고 ‘우연’이 개입된 것은 진화론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 자체에 ‘우연’이 개입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만일 그때 거기에 그 위인이 없었다면, 그때 그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때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거기서 그녀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안다. 어렵게 역사를 따지지 말고 바로 자신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모님의 수많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 가능성이 있었는데 어떤 한 시기에 어떤 한 특정 정자가 어떤 한 난자를 만남으로써 자기가 태어났다. 그 정자와 난자가 우연히 만났다는 표현이 틀렸나? 물론 그걸 신이 개입하신, 또는 운명이었다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적인 설명으로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하게 된 일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 일은? 그 모든 일은 우연히 그 시기에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던 우연한 사건들이 계기이지 거기에 무슨 정해진 계획이 있어 선조는 아무런 생각이나 자유의지 없이 만났다는 게 아니다. 자, 이제 자신의 탄생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우연함과 우연함이 엮어있었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그 이유로 이제 자신의 존재라는 건 별 가치가 없고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우연과 우연이 겹쳐 현재에 이른 것이 너무나도 기적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4. 진화론은 목적성을 무시하고 그냥 우연히 인간까지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니까 문제다. 왜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다고 우기는가?

모든 자연현상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것이므로 그 사건으로부터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과 목적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이전의 유럽인들 믿음이었다. 최근 창조론의 새로운 변신형태인 지적설계론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너무나 귀엽고 신비스러운 아기의 탄생,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자연에서 신의 손길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아기의 죽음, 끊임없는 고통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먹고 먹히는 실제 모습에 대해서는 신의 손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을 못 했던 이론이다. 아름다운 꽃의 달콤한 꿀은 곤충을 끌어들이는 목적을 가지고 세심하게 설계되었으며 거기서 신의 손길과 목적성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와 온갖 병원균의 정교한 설계와 그 목적성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 하는 이론이다. 바퀴벌레약 회사사람들을 위한 목적성이라는 식의 설명만이 있었을 뿐......

진화론의 기본 생각은 특별히 진화론만의 어떤 고집이 아니라 모든 과학 이론이 가진 평범한 생각일 뿐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우주 전체를 운행하는 메커니즘은 신이 직접 손으로 행성을 돌리고 은하를 회전시키는 게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이론 같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도 엄밀한 자연법칙에 따라 정교하게 조정되는, 그 어떤 예외도 허락되지 않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메커니즘의 주된 부분들이 현재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신의 손길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그 메커니즘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오해이다. 이미 정교하고 엄밀한 자연법칙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진화론이란 어쩌다 저절로, 어쩌다 저절로 진화한다는 거라는 잘못된 인식 (2번 답변) 을 가진다면 당연히 신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겠지만 그런 진화론은 없다. 진화론에서는 엄밀하고 예외없는 자연법칙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는 자연법칙에 의해 이 우주와 이 세상 전체가 운행된다는 건 믿으면서, 생명의 진화에서만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아직 못 찾았다.

지적설계론 (ID론)의 허구성



5. 과학적으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건 도덕성 상실을 가져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므로 진화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타락한 진화론 세계관의 대결이다.


창조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은 진화론에 무슨 과학적인 결함이 있다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비과학적이고 심리적인 이유로 진화론에 원초적 두려움을 가진다는 게 바탕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원숭이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타락할 것이란 주장이다 (지적설계론자 낸시 피어시의 워싱턴 청문회 증언 등). 최근에는 과학적인 토론이나 증거제시가 불가능해지자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냐는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창조론 논쟁을 마치 (고귀한) 종교적 세계관과 (타락한) 세속적 세계관의 갈등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려는 시도이다 (박희주, 한국과학사학회지, 24권 (2002), 121-146).

창조론의 허구성 – 진화론의 해악?

물론 이건 조금도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적인 걸 따질 필요 없이 도덕성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이니까. 그렇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는커녕 자기가 속한 은하계에서조차 외곽 변두리 태양계에 속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도덕성의 상실을 가져온다고는 왜 말하지 않나? 우린 그냥 흔하고 흔한 행성의 하나에, 그것도 은하 변두리에 사는 촌놈에 불과하니까 젊은이들이 타락할 거란 주장. 이건 말이 안 되고 저건 말이 되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인간이 고귀한 존재인지 아닌지, 자신이 귀중한 존재란 세계관을 가질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우리 마음, 우리 결정에 달렸지 그게 어떤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란 것이다. 자신이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꼭 무슨 과학자들이 증명해야 하나? 자신이 인간이며, 고귀한 존재라는 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도 마찬가지로 고귀한 존재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 자신은 양반 상류계급 자손이 아니라 사실은 백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백정의 자손이니까 타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새롭게 재출발하는 것이 옳은가?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꾸며갈지 말지는 자기가 결정할 문제가 아닐까?

원숭이란 동물과 가까운 친척 관계라는 진화론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재미있는 점은 원숭이와 인간이 완전히 다르다며 차별화하려던 옛날 유럽인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흑인 노예들과 유색인종들을 백인과 차별화시켰다는 사실이다. 18세기나 19세기 예를 들 것도 없이 21세기 직전까지 진화론이 철저하게 금지됐던 나라가 있다. 라디오 과학 프로그램에선 ‘진화’ 대신 ‘발전’이란 말을 사용해야 했고, 고대인류의 화석은 악마의 짓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금지됐었다. 어느 나라였을까? 21세기 직전까지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을 추진하던 그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진화론이 없어지면 모두의 도덕성이 향상되고 인종차별도 없어진다는 창조론자들 주장은 착각이다.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다.

진화론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서 진화한 존재라는 걸 알게 해서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그건 창조론자들만의 생각이다. 자기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에 빠져 짐승 수준의 세계관을 가지고 타락할 것이란 착각. 하지만, 과학은 다른 것도 알게 해 줬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지만 그 대신 어느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우리 머리로는 이해되지도 않는 광대한 우주가 위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지구라는 한 행성 위에서 인간은 더더욱 보잘 것 없는 조그맣고 힘없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바로 그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 전체의 모습을 관찰하고 우주의 역사를 해명하며, 자기들 지구 생명의 역사 전체도 밝히려는 존재로까지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당신은 우주 전체의 역사 138억 년 (창조론이 주장한 초라하고 빈약한 6,000년이 아닌) 에서 최초로 나타난, 그 어떤 별이나 은하와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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