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신의학회(APA)가 정신병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배경과 이유, 그리고 음모론
주장: 미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1973년 동성애를 DSM-Ⅲ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계의 결정은 과학적이지 않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동성애 운동가들이 연례 학회를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협박했다. 결국 APA 위원회는 이에 굴복해서 삭제하기로 했으나, Charles Socarides가 이에 반대해 회원 전체투표를 했다.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Gay Task Force에서는 APA의 모든 회원들에게 삭제 투표를 하라는 협박편지를 보냈다. 전체투표 결과, 찬성 입장이 APA 전체 회원의 1/3도 되지 않았으나 APA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삭제했다. 운동가 Gittings는 Lahausen과 함께 파괴적 공격인 몽둥이 전술을 내세웠으며, 훗날 둘은 Making History라는 책에서 학계의 결정이 언제나 정치적이었음을 인정한다. 이뿐만 아니라 게이 과학단체의 압력에 저널 Science가 굴복하여 직원고용과 광고에 반동성애 편견을 금지했고, LeVay와 Hamer의 엉터리 연구를 실어주었다. 학계와 사회는 동성애 운동에 의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음모론을 만드는 것은 쉽다.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거기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 증거만 모으면 된다. 예컨대 달착륙을 부정하면서 가치가 없는 근거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이야기를 각색해내는 것이다. 과학적 회의주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반대 증거와 대안 가설을 탐구하기 시작하면, 음모론은 그 힘을 잃는다. 건사연의 글을 검토해보자.
일단 건사연은 맨 처음에 "그건 결코 의학적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결정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고 그것은 정치적인 조치였다."를 Ryan Sorba의 인용구랍시고 써놓았는데, 이 사람은 자기들이 퍼온 글을 쓴 반동성애 운동가일 뿐 해당 인용구를 말한 사람이 아니다. 그 인용구와 바로 뒤의 인용구인 "그것은 우리가 10년이 지나 얼마나 왔느냐이다. 지금 우리는 정신의학회를 두려움에 떨게까지 하고 있다." 모두 Barbara Gittings가 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번역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건사연은 "30명의 무장된 그룹이 워싱턴에서 열리는 정신의학회 회의에 난입하였고"라고 번역했는데, 사실 여기서 "무장된 그룹"이란 단어는 원문에서 "militants"다. 급진적 행동파라는 문맥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무장된 그룹이라니 너무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총기류 같은 무기를 들고 난입해서 위협했으면 공권력이 출동하거나 매스컴 타야지) 이렇게 학술적으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실수들이 발견되면 건사연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건사연은 그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당시 실제 상황은 어땠을까? 모든 방면에서 차별이 만연했다. 동성애자는 직업을 구하기는커녕 공권력으로부터 위협받기까지 했다(그리고 이런 차별은 수많은 지역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천문학 Ph.D를 소지한 Franklin Kameny는 동성애자, 즉 당시 관점에서는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해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1. 당시에는 각종 "치료"가 행해졌는데, 놀랍게도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객관적 근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치료"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치료"가 행해질 정도로 의학계 역시 편견이 뿌리깊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행동주의자들이 나서서 몇 년간 부당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2000명이 무기도 없이 야유하는 몇 명한테 벌벌 떨 리가 있겠는가? 마침내 Kameny와 Gittings, 가면을 쓴 정신의학자 John E. Fryer가 1972 년에 "Psychiatry: Friend or Foe to Homosexuals: A Dialogue"라는 토론을 APA와 가졌다. 여기서 이들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기에 동조하는 다른 정신의학자들의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차별주의적인 입장에 있었던 David Rueben의 강의에서 경찰관과 시위자의 무력충돌이 있었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몽둥이", "벌벌 떨었다", "그건 완전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등의 인용구를 정확한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가져온 것(quote mining)을 보아하니 고의적인 선동의 소지가 다분하다. 예컨대 "의학적 결정이 아닌 정치적인 결정"이 쓰인 문헌인 Making History를 보진 못 했지만, 활동가 자신들이 나서지 않고 오로지 의사들의 손에 맡겼다면 그 변화 속도가 현저히 느렸을 거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사실 편견을 빼고 보면 지극히 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학회에 찾아가 이의를 제기하고 야유도 했으며 토론도 했다. 건사연은 이들이 폭력적이고 온갖 권모술수를 쓴 것처럼 써놓았는데, 당시 직업도 잃고 변태로 치부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이 미국정신의학회(APA)를 시작해서 미국심리학회(얘도 약자가 APA라서 혼동에 주의해야 한다), 미국질병통제센터(CDC), 과학진보를 위한 미국연합(AAAS)을 모두 장악해서 멋대로 휘둘렀다고?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AAAS가 직원 고용과 광고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했다는 사실이 동성애자가 장악했다는 증거인가? 피해의식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도 동성애자의 지배 목록에 포함해야겠네? 고작 협박(?)편지[^내용]와 시위 좀 했다고 전세계 과학자들이 바들바들 떨어서 결정을 바꿨다니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차별주의적 피해의식은 치워버리자. 사리분별이 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동성애자 운동가들이 근거 없는 의학적 접근에 부당함을 표출하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럼 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한 시점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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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Kameny, Gittings, 그리고 Fryer가 연 토론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의사 표명 끝에 미국정신의학회의 이사회는 기권자 2명과 불참자 4명을 제외하고 남은 13명의 동의(사실상 만장일치)로 동성애 정신질환 삭제를 결정했다^2. 당시에 동성애가 질환이라는 객관적 근거가 미약했다. 또한, 이사회는 철저하게 지금까지의 연구를 조사하고 종합해서 판단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반동성애 의사 Charles Socarides를 비롯한 집단이 들고일어나 APA 전체 투표를 실시케 했다. 이러한 반응은 최초의 반발이어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사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전체투표를 하기 위해 강한 외부 로비가 있었음은 건사연이 말해주지 않는 사실이다^3. 그런데 전체 투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APA 총 일반 회원수 : 17,905명 총 투표자 수: 10,555명 기권 : 367명 반대: 3,810명 찬성: 5,854명
기권 제외하고 대략 6:4로 삭제 찬성이 과반수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건사연은 굳이 미투표자까지 포함해서 찬성자가 적다느니 징징대는데, 학계를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60%정도의 샘플은 충분히 집단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가 참여한 투표를 인정했어야 한다거나 어떻게 과학적 사실을 투표로 가리냐면서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중력의 법칙이나 정신 질환 여부나 과학적 검증에 기반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건 동성애를 삭제할 지 말지 결정하는 투표가 아니라 단지 이사회의 결정에 동의하느냐 마냐이며, 그리고 이 투표를 시작한 게 삭제 반대를 주장하던 측이라는 걸 잊지 말자[^출처].
차별주의적 음모론자의 지적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들은 논증 구성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저질렀다. 바로 발생학적 오류다. 발생학적 오류란 어떤 것의 속성을 현재의 맥락이 아닌 그 기원으로부터 추리하는 오류다. 예컨대 "알루미늄 원석이 날 수 없으므로 그것으로 만든 알루미늄 비행기는 날 수 없다"를 들 수 있다. 창조설자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른다: "만일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동물에서 인간이 진화했으면, 인간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건사연은 당시 삭제 결정이 정치적이었으므로 지금 학계의 합의도 정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듬어서 표현하면 "APA 삭제 결정이 객관적이지 않았으므로, 그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 학계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로 명백한 발생학적 오류다. 전제의 사실 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올바른 방식으로 주장하려면 현재 학계에서 동성애를 대하는 패러다임이 틀렸다는 객관적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 철저하게 논문을 써서 학계에 내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줄 텐데 어째 거기에 혈안이 되어있어야 할 과학자들까지 잠잠하다(당장은 아닐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근거가 모이면 학계가 인정하게 되어있는데도). 결국 APA 음모론의 수준은 창조설자 음모론과 다를 게 없으며 학계 비방으로밖에 안 보인다. 거증 책임은 차별주의에 있다.
[caption id="attachment_2272" align="alignleft" width="216"] 2010년의 Simon LeVay |
또 이들은 LeVay의 논문과 Hamer의 논문이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 LeVay의 논문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논문의 의의는 여전하다. LeVay가 성적 지향에 따른 뇌 차이를 연구하는 분야를 개척했고, 이성애자 남성과 동성애자 남성 간의 INAH3 크기가 유의미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건 LeVay 본인이 당시 Science에서 자신의 연구가 갖는 한계를 밝혔으며[^4], 1994년 본인 인터뷰에서도 말했다^5. 그리고 Hamer의 논문은 비록 적은 수의 샘플을 사용한 문제점이 있었지만, 재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오다 2014년에 역대 급 샘플 수에서 또다시 재현되었으며 최신 방법론과 더 큰 샘플 수로 교차검증 할 예정이다^6. 덧붙여 얼마나 동성애가 선천적인지와 상관없이 학계에서는 동성애가 정상적이며 성적 지향을 바꾸는 과학적인 방법도 없다는 합의에 도달한 상태다. 학계가 자정 능력이 없다면 왜 굳이 계속 검증을 시도하여 재현 성공과 실패 논문이 발표되며 논란을 키우는가? 더군다나 성적 지향의 선천/후천 여부와 성적 지향의 변화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계 비방으로밖에 안 보인다.
덧붙여, 관련 학계들은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잘못 분류되었음을 인정하고 정신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결정되었음을 최근까지도 밝히고 있다.
As results from such research accumulated, professionals in medicine, mental health, and the behavioral and social sciences reached the conclusion that it was inaccurate to classify homosexuality as a mental disorder and that the DSM classification reflected untested assumptions based on once-prevalent social norms and clinical impressions from unrepresentative samples comprising patients seeking therapy and individuals whose conduct brought them into the criminal justice system. (그러한 연구 결과가 누적되면서 의학, 정신건강, 행동과학, 그리고 사회과학 전문가들은,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했던 것이 부정확했으며 DSM 분류가 한때 팽배했던 사회적 규범 및 치료법을 원하던 환자와 형사사법체계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인으로 구성된 대표성 없는 표본으로부터 받은 임상적 인상에 근거한 검증되지 않은 가정을 반영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7]
이 문서는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2008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In re Marriage Cases(Case No. S147999)의 법정 조언으로 제출되었다. 미국심리학회(APA), 미국정신의학회(APA), 캘리포니아 심리학회(CPA), 미사회사업가협회(NASW)가 동성결혼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참고:
[^내용]: “Our presence there was only the beginning of an increasingly intensive campaign by homosexuals to change the approach of psychiatry toward homosexuality or, failing that, to discredit psychiatry.” (The Gay Crusaders p. 130-131) 번역하자면, "우리가 거기 참석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의 접근법을 바꾸거나 정신의학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본격적인 캠페인의 시작에 불과합니다."다. 이게 협박 편지라면 얼마나 위협적인가?
[^4]: Science 1 November 1991: Vol. 254 no. 5032 p. 630 DOI: 10.1126/science.1948039
[^7]: Brief Amici Curiae of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California Psychological Association,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and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California Chapter in Support of the Parties Challenging the Marriage Exclusion, Case No. S147999 in the Supreme Court of the State of California, In re Marriage Cases, Judicial Council Coordination Proceeding No. 4365 (2007), p. 9 http://www.courts.ca.gov/documents/Amer_Psychological_Assn_Amicus_Curiae_Brief.pdf [^출처]: Drescher, J. (2015). Out of DSM: Depathologizing homosexuality. Behavioral Sciences, 5(4), 565-575. http://www.mdpi.com/2076-328X/5/4/56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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